프롤로그
이 번 글에서는 부산에 살다가 강원도로 이사를 간 어느 부부의 재미있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원도 일기
8월 12일
강원도의 새 집으로 이사 왔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회사에서 강원도 발령 얘기를 듣자마자 소규모 펜션을 하나 구입하였고 적절하게 리모델링을 했더니 이건 뭐 별장이 따로 없다.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고 너무 행복하다.
9월 6일
친구 부부 여섯 명이 방문하여 주말을 끼고 하루 자고 간단다.
그래 나의 멋진 별장을 보여주마! 별채에 세 부부가 자려면 며칠 전부터 숙소를 손봐야 했는데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할 일이 많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대가족이 놀러 와도 충분히 잘 수 있게 되어 마음은 뿌듯하다.
9월 9일
예정대로 친구 부부들이 도착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고기를 구웠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행복했다. 겨울에는 눈 때문에 고생 좀 할 거라는 한 친구의 뜬금없는 얘기만 빼고...
나의 멋진 별장을 보고는 모두 그림 같다고 말하면서 부러워한다.
10월 23일
이곳은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니 나뭇잎들이 울긋불긋하게 바뀌면서 총 천연색 유화를 보는 것 같다.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집 앞에서 단풍 구경을 할 수 있다니 신기하고 행복하다.
11월 17일
이제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부산에서 살 때는 눈 구경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곳은 눈이 많이 온다고 하니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일지 정말 기다려진다.
12월 2일
드디어 간밤에 눈이 왔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이 온 것이다. 나무 형태 그대로 쌓인 눈은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마당을 쓸면서 아내와 나는 눈 사람을 만들어 본채 앞에 세워 두었다. 눈싸움도 했는데 함박눈으로 하니 더욱 재미있었다.
12월 9일
며칠 뜸하더니 또 눈이 왔다. 다시 보아도 눈 덮인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 아내와 내리는 눈을 감상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12월 13일
순백색의 하얀 눈이 계속해서 더 오고 있다.
12월 19일
간밤에 함박눈이 내렸다. 무릎까지 눈이 쌓여 회사에는 월차를 내고 집 앞의 눈을 치웠지만 다시 쌓여 아무 소용없었다.
12월 22일
이 망할 놈의 눈이 또 오고 있다. 회사는 가지도 못하고 눈 쌓인 지붕이 무너질 것 같아 사다리에 올라가서 삽으로 눈을 치웠다. 한 번은 사다리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다. 정말 죽을 뻔했다.너무 힘들다.
12월 23일
이 X 같은 눈이 더 쌓이고 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손에 물집이 생기고 허리가 아파서 눈도 못 치울 지경이 되었다. 멀리서 움직이는 제설차는 소리만 요란하고 제대로 눈을 치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고 뭐고 드디어 몸살이 났다. 아내도 감기가 심하게 걸렸다. TV를 보니 다른 곳은 눈이 안 오는지 화이트 크리스마스 타령을 하는 멍청이들이 나왔다. 모두 불러다가 여기 눈을 치우도록 해야 한다.
12월 25일
이제 말하기도 힘들다. 메리 크리스마스! 계속 눈이 오고 있다.
12월 27일
간밤에 이 망할 놈의 X 같은 눈이 더 많이 내리고 또 쌓였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식량 떨어져서 굶어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12월 28일
곧 그칠 거라는 기상대 예보와 달리 또 눈이 왔다. 이제는 흰색이 징그럽다. 이렇게 눈 속 파묻혀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1월 4일
오늘에서야 겨우 집을 나갈 수가 있었다. 먹을거리와 음료수만 사 가지고 집에 오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3월 5일
오랜만에 세차장을 갔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긴 했지만 염화칼슘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산지 1년도 안된 차가 전부 녹이 슬어버렸다.
5월 11일
퇴사를 불사하고 근무지 변경을 요청하여 부산으로 이사 왔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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