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의 리더십 - 작은 일과 큰 일을 대하는 자세

프롤로그

이 번 글에서는 조선의 최고 재상, 황희 정승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왕인 세종 시대의 가장 뛰어난 관료였던 그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단호하게 일을 추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황희 정승이 강원관찰사 일 때의 일화

황희 정승이 강원관찰사로 부임했을 당시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관동 지역에 심한 가뭄과 기근이 들어 그 지역의 많은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는데 황희는 신속하게 중앙정부에 공조를 요청하고 새로운 원칙과 제도를 수립하여 무사히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황희 정승
황희 정승

세종에게 직접 전라도 등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다른 지역의 식량을 관동지역으로 이송해달라고 강력히 요청을 하였고 공급받은 식량의 전체 배분 업무를 지역 관료가 아닌 선발된 승려들이 맡도록 하여 백성들의 생명줄과 같은 곡식 배분에 어떠한 비리도 발생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구제 실적을 기준으로 관리들을 인사 평가하고 그에 따라 상과 벌을 주는 제도를 시행하여 모든 관리들이 백성들의 구휼에 보다 집중하도록 하였습니다.

황희 정승의 나라일과 집안일

또한 황희 정승은 세종이 여진족 토벌을 주저하고 있을 때 토벌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며 연로함을 무릅쓰고 북방 현장 조사를 직접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종도 생각이 크고 학문이 깊으며 능력과 재주가 출중하여 주요 정사 논의 시 황희 정승 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 일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황희 정승이 집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두 종이 말다툼을 하면서 황희 정승에게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자 두 종 모두에게 "네 말이 옳다"고 말하였고 그것을 본 부인이 황희 정승에게 핀잔을 주자 "부인 말도 옳소"라고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입니다.

잘 알려진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반구정: 황희 정승이 퇴임 후 여생을 보낸 곳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변 정자)
반구정: 황희 정승이 퇴임 후 여생을 보낸 곳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변 정자)

이 뿐만이 아닙니다.

손자들과 종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다가 갈아놓은 벼루를 발로 차서 온 방이 엉망이 되었는데 종의 아이들만 혼쭐이 나자 황희 정승은 "나의 손자들이든 종의 자식이든 모두 똑같은 백성인데 차별해서는 안된다"라고 만류했으며 무릎에 올라가 본인의 수염을 손으로 잡아당기는 철없는 종들의 자식들도 그냥 웃어넘기는 그였습니다.

황희 정승의 리더십

집안의 작은 일에는 어떠한 결정이나 편도 들어주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화도 내지 않는 어떻게 보면 우유부단한 그였지만 국가의 대소사에 있어서는 뛰어난 통찰력과 학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강력하게 추진했던 재상이자 최고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고 광분하면서도 큰 일에는 결정을 미루고 우왕좌왕하는... 정반대인 지금의 리더들을 보면서 황희 정승이 보여준 진정한 리더십을 더욱 생각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