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차이콥스키는 세계적인 러시아의 작곡가로 특히 발레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너무도 잘 아는 그의 3대 발레 작품입니다.
음악인생
러시아 감성으로 러시아 음악을 전 세계에 알린 그도 처음에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음악가가 되고자 하는 의지도 소질도 있었지만 공무원이 되길 원하는 그의 부모를 거스르지 못하고 법률 공부 후 공무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열정을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고 20대 초반에 뒤늦게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까지 되었으나 결혼 실패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음악원도 그만두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을 여행하면서 기존 서유럽 음악의 형식이면서도 러시아 감성의 음악과 발레곡을 창작하면서 지휘와 연주를 병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과 같은 명성과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의 대표 발레곡 중 하나인 백조의 호수가 첫 공연에서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다른 발레곡들도 그의 뛰어난 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스토리와 안무의 부조화로 인하여 인기를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차이콥스키가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예술가들에 의해 발레의 스토리와 무용이 보강이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호평받는 작품들이 된 것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가 제시한 러시아 음악은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외 없이 널리 사랑을 받는 명곡들이 되었습니다.
영감
천재의 위대성은 사후에 재평가되고 재확인이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들의 업보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그의 음악적 성과가 타고난 재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어 소개합니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한 여성이 어느 날 작곡에 대한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는지를 차이콥스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매일 이른 아침, 내가 작곡실에 들어가면 곡에 대한 영감도 알아서 따라 들어옵니다"
비록 살아있을 때 보다 죽어서 더 유명해진 불운의 천재 예술가이지만 천재성과 성실성을 함께 갖추었기에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명곡들을 창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