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탄생
147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시골의 유모 집에서 키워졌는데 이때 유모의 남편 직업이 석수장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조각용 끌과 망치를 갖고 놀게 되었던 미켈란젤로가 조각가로 성장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예술가로 성장하고자 하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집안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는 것인데 아버지나 삼촌들로부터 혼이 나고 두들겨 맞았지만 그의 예술가에 대한 열정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큰 전환점은 예술을 사랑하는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띄면서 예술가적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도 매우 값비싼 대리석을 마음껏 조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유명인사들과 학자들에게 철학과 문학을 배우는 기회까지 주어져 예술 활동에 필요한 학식과 소양도 높이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조각한 피에타(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2m의 조각상, 마리아의 아름다움과 예수의 죽음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표현)로 일약 스타가 되어 르네상스 시대의 3대 예술가 거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듯하였습니다.
마침내 구약 성서에서돌팔매로 거인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을 조각한 다비드 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거장의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에도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등의 회화 작품과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등 다방면의 걸작 예술품들을 남겼습니다.
미켈란젤로 동기
미켈란젤로는 외모를 꾸미는데 관심이 전혀 없어서 외출 시에도 작업하던 상태 그대로 다닐 정도였습니다.
또한 성격도 까다롭고 직설적이며 거만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윗사람은 물론 교황에게 조차 대들거나 친구들에게도 자주 독설을 내뱉어서 폭행을 당하고 왕따를 당하기도 한 매우 독특하고 전형적인 천재 스타일이었습니다.
당연히 동시대 선배 예술가인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도 사이가 매우 안 좋아 만나기만 하면 쌍욕을 하면서 싸우는 사이였고 후배 라파엘로 산치오도 다빈치만큼은 아니지만 원만하지 않았고 상당히 껄끄러운 관계였습니다.
이와 같이 까칠하고 고집 세며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졌던 미켈란젤로에게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에 따라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무려 4년 동안 모든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두문불출 성당에만 틀어박혀 그림 그리기에만 매달리던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위문하기 위해 방문한 한 친구가 질문을 합니다.
"이보게 친구, 거기는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인데 왜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가? 그렇게 완벽하게 그렸는지 나중에 그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왜 그가 세계적 예술가로서 그 많은 걸작 예술작품들을 남길 수 있는지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로 인해 모든 일을 빈틈없이 하려는 이런 내적 동기를 '미켈란젤로 동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술가는 물론 정치든 종교든 엔지니어든 전문가를 자청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되새겨 볼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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