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사성은 한 무명 선사를 찾아가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습니다."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맹사성은 또다시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한사코 그를 붙잡았습니다. 맹사성은 못 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앉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차를 찻잔에 따르기 시작한 후 찻물이 넘치는데도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으로 흘러 모두 적시고 있습니다." 맹사성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한방을 맞은 듯하였고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지면서 민망함에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머리를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맹사성
맹사성은 조선 초의 황희 정승과 함께 세종 시기는 물론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재상이자 청백리의 상징으로 통하며 우의정, 좌의정까지 올랐습니다.
황희는 강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추진하는 인물이었는데 맹사성은 자신의 의견을 내더라도 분명하게 개진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신중하게 의견을 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좋은 의미로는 부드러운 성품의 호인이었지만 나쁜 의미로는 물러 터진 사람이었다는 뜻으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맹사성의 이런 면모는 황희와의 2인 체제에서 조화롭게 작용했는데 맹사성의 성품이 황희 같은 강직한 대신들의 단호함이나 날카로움을 완화시키고 대신들 간의 논쟁을 중재해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황희와 맹사성은 일종의 상호 보완 관계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시고 뭐 느껴지시는 것이 없으신가요?
그래서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부드럽게 중재하고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닐까요?
혹시 19세 장원급제 후 하늘을 찌를 듯한 자만심으로 가득 찬 맹사성에게 지혜롭고 따끔하게 겸손의 필요성을 알려준 한 이름 없는 스님 때문은 아닐까요?
겸손
큰 선거가 끝났으니 곧 정권교체가 되면서 수많은 고위 관료들이 떠나고 새로 임명될 터인데 한 번은 되새겨 볼만한 내용이라 공유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 동양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겸손의 미덕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어 왔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냐는 말로 맹사성에게 일침을 가하고 황급히 나가면서 마침 머리를 부딪히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다는 확인사살(?) 두 번째 겸손 주사를 바로 놓으신 이름 모를 스님의 위트와 재치 그리고 해박한 지식에 저 스스로도 다시 한번 겸손해집니다.
아무쪼록 겸손하면서도 능력 있는 많은 분들이 고위직에 임명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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